로마에서 길을 잃은 건 일부러였다. 트레비 분수에서 나와 사람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도시가 달라지는 지점이 온다. 간판이 이탈리아어로만 써있고, 테이블 없는 가게들이 나타나고, 현지인들이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지나친다. 골목이 좁아지다 넓어지는 어느 모퉁이에 작은 가게가 있었는데, 유리 너머로 기름이 끓고 있었고 사람들은 서서 뭔가를 손에 들고 먹고 있었다. 줄도 짧았고 메뉴판을 볼 틈도 없어서 앞사람이 받은 걸 그냥 가리켰다.
** 수프리(Suppli) ** 였다.
종이 냅킨 하나에 올려줬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뜨거웠다. 반으로 쪼갰을 때 치즈가 실처럼 길게 늘어났고, 한 입에 다 들어가지 않는 크기였지만 두 번 만에 끝냈다. 그리고 하나 더 샀다. 먹고 나서도 한참을 그 가게 앞에 서 있었는데, 딱히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다. 기름 냄새, 사람들이 서서 먹는 풍경, 그 골목의 온도 같은 것들이 좋았다. 여행에서 오래 남는 건 유명한 장소보다 이런 순간인 경우가 많다.
수프리가 무엇인가
수프리(Suppli)는 로마식 라이스 크로켓으로, 토마토 소스로 볶은 리소토 안에 모차렐라를 넣고 빵가루를 입혀 튀긴 음식이다. 이름이 프랑스어 surprise에서 왔다는 말이 있는데, 반으로 쪼갰을 때 치즈가 늘어나는 그 순간 때문이라는 게 설득력 있다. 로마 사람들에게는 피자 가게나 튀김 전문점에서 사 먹는 일상적인 간식이고, 여행자에게는 골목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음식이다.
집에서 만들 때 핵심은 두 가지다. 리소토가 충분히 식어야 모양이 잡히고, 모차렐라는 냉동해서 넣어야 튀기는 동안 너무 빨리 녹지 않는다.

레시피 — 수프리
재료 (8개 기준)
리소토 쌀 200g (리소토용 아르보리오 또는 일반 쌀) 토마토 소스 150g 양파 1/4개 올리브오일 1큰술 화이트와인 50ml 육수 400ml 소금·후추 적당량 파마산 치즈 2큰술
속 재료 모차렐라 100g (냉동 30분 후 사용)
튀김옷 달걀 2개 빵가루 100g 밀가루 적당량 튀김용 식용유
만드는 법
1. 리소토 만들기 양파를 잘게 썰어 올리브오일에 볶다가 쌀을 넣고 투명해질 때까지 볶은 뒤 화이트와인을 붓는다. 육수를 조금씩 나눠 부으며 쌀이 익을 때까지 저어주고, 토마토 소스와 파마산 치즈를 넣어 소금·후추로 간한다. 넓은 트레이에 펼쳐 완전히 식히는데, 이 과정을 건너뛰면 모양이 잡히지 않는다.
2. 모차렐라 준비 모차렐라를 1.5cm 크기로 잘라 냉동실에 30분 넣어둔다.
3. 모양 잡기 손에 물을 묻히고 리소토를 한 줌 쥔 뒤, 가운데 모차렐라를 넣고 완전히 감싸 타원형으로 빚는다. 크기는 달걀보다 조금 큰 정도가 적당하다.
4. 튀김옷 입히기 밀가루, 달걀물, 빵가루 순서로 입히고 빵가루는 꾹꾹 눌러 잘 붙인다.
5. 튀기기 170도 기름에 넣고 4-5분, 겉이 진한 갈색이 될 때까지 튀긴 뒤 꺼내서 1분 두었다가 먹는다.
만들어보고 나서
처음엔 리소토를 덜 식혀서 손에 다 달라붙었다. 냉장고에 한 시간 정도 넣어두면 훨씬 잘 잡힌다. 모차렐라를 냉동하지 않고 넣었을 때는 튀기는 도중 다 녹아버렸는데, 치즈가 늘어나는 게 수프리의 핵심이니 이건 꼭 지키는 게 맞다. 로마 골목에서 종이 냅킨 하나에 받아 든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반으로 쪼갰을 때 치즈가 늘어나는 순간만큼은 그 오후가 잠깐 돌아오는 느낌이 있다.
여행은 끝났지만 맛은 남는다
로마를 다시 가더라도 그 골목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시는 기억과 조금씩 달라져 있을 것이고, 그 가게가 아직 거기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게 꼭 아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여행지의 음식을 집에서 다시 만드는 건 그 순간을 복원하려는 게 아니라, 그 감각을 일상 안으로 데려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똑같을 필요는 없다. 기름이 끓는 소리가 들리고, 치즈가 늘어나는 순간이 오면, 잠깐은 거기 있던 사람으로 돌아간다.
여행은 떠나는 것만큼이나 돌아온 뒤에도 계속된다. 냉장고를 열다가, 냄비 앞에 서다가, 어느 날 문득 그 골목 생각이 난다. Travel Kitchen은 그 생각이 날 때 같이 만들어볼 수 있는 곳이고 싶다.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고, 재료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음식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충분하다.
이탈리아 골목 음식이 더 궁금하다면, 지난번에 올린 피렌체 이야기도 같이 읽어보길 권한다. 수프리보다 조금 더 낯설지만, 한 입 먹고 나서 또 생각나는 음식이다.
→ 람프레도토 파니노, 피렌체 골목의 맛